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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인데 우울증에 시달려요. 도와 주세요…
채규만 박사
한국 심리건강센터장, 성신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상담사례
교인인데 우울증에 시달려요. 도와 주세요…
질문: 저는 40대 남자이면서 가장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하루 우울하고 불면증도 있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의욕이 없으며, 직장을 구했어도 초기에는 열심히 일을 하는데, 조금 지나면 쉽게 지치고, 싫증이 나서 그만 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아내에게도 떳떳하지 못하고 많이 힘듭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조용히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우울증에 관한 정보를 얻어서 증상 원인 등에 관한 정보는 잘 알고 있지만, 저에게 적용하는 것이 잘 안 되네요. 참고로 저는 모태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데요, 교회에서는 마귀 때문에 제가 힘들다고 하는데, 교회의 가르침이 저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네요. 우울증을 심리학적 신앙적인 면에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답변: 우선 직업에 적응하기가 어려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저하되어 자살 생각 까지 스쳐 지나가시는 것을 들으니까 아주 힘드실 것 같네요. 특히 40대에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좌절감이 많으실 것 같네요. 또한 아내의 수입으로 가정 경계를 꾸려 나가시는 경우에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기에 더 우울하실 것 같아서 사연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문제를 마귀 때문이라고 하셨을 때 내가 마귀에 의해서 조정을 당하는가 하는 생각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첫째: 중세 기독교에서는 정신과적인 심리적인 문제나 증상을 마귀의 작용으로 간주한 역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망상을 보고, 귀에서 환청을 듣고, 자신들의 생활 관리를 잘 못하는 경우에 귀신들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중세에는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으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은 기록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정신분열증은 유전적인 요소가 강하고 두뇌에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의 과다 분비가 가장 큰 원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중적인 메시지를 주거나, 비난과 비판을 많이 받고 성장했기에 환자 자신도 자신을 비난하고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많아서 정신과적인 병으로 발전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울증 역시 두뇌에서 세로토닌의 결핍으로 인해서 기분이 저조합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심한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하지만, 인지행동 치료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왜곡된 사고를 변화 시켜 주면 우울증에서 회복이 됩니다.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를 영적인 원인으로 돌리게 되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이 사라지고,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고, 또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녀 사냥식으로 접근하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제 신앙인들의 정신적과인 문제는 생물학적, 개인적, 사회적,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제들의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발생한 다는 균형있는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취약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관한 연구를 보면, 우울한 사람들은 세상과 자신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많이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우울한 사람들은 과거에 성공한 경험이 있어도, 실패한 사건에 선택적으로 초점을 맞추거나, 남들이 지적하는 장점도 무시하거나 부정합니다. 또한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 특징인데, 미래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와 같이 누구나 과거, 자신, 미래에 부정적인 사고를 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환경을 바꾸기 보다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나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즉 인지 왜곡에서 벗어나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너희가 진리 안에 거하면 자유와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 말씀을 음미해 보면 우리가 비 진리 안에 거하면 자유 대신에 속박과, 평안함 대신에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는 뜻입니다. 사실이 아닌 생각에 매여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성경이나 심리치료의 공통적인 원리입니다. 예들 들면, 귀하는 자존심이 낮다고 표현했는데, 귀하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돈을 버는 것이나, 학문이나, 외모에 기준을 두면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쭐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울하시지는 않았는지요? 성경은 우리 자신의 약점과 허물을 예수님께서 대신 갚으셨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자신을 수용하시는 것처럼 귀하도 자신의 약점, 장점 모두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근본적으로 우울증에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셋째: 귀하와 같이 우울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자아(ideal self)와 현실적인 자아(real self)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만큼 현실이 따라 주지 못할 때 우울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귀하는 원하는 직장을 가지지 못했고, 예상만큼 돈을 못 벌어서 우울합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울한 사람들은 당위적인 이상적인 자아가 강하고, 이를 가지고 현실적인 자아를 공격하면서 비난하고 멸시하고,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예컨대, “너는 직장을 구하면 당연히 유지 했어야 하는데, 못한 것을 보니까 정말 미련하고, 형편없구나.”, “넌 가장으로 당연히 돈을 벌어서 주도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을 보니까 한심하다.”라고 자신의 당위적인 이상적 자아로 현실적인 자아를 심판하고 정죄할 때 우울증이 생깁니다. 이러한 현상을 성경은 우리가 율법이라는 당위아래 사는 삶으로 표현을 했고, 율법아래 있으면 심판과 정죄하는 삶이기에 평화가 없고 율법아래 사는 것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당위적인 이상적인 자아라는 폭군 밑에서 사는 사람들은 살아서 지옥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은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십자가상에서 대신 속죄양으로 청산 했기에,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정죄할 권리조차 없다고 하십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 자신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번에 못했는데, 다음에 더 열심히 잘하자.”라는 태도로 자신을 수용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로운 태도로 우리 자신을 대해야,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는데, 얼마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수용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성경적인 답변은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고 답변하시는데 이 말의 참뜻은 하나님 앞에 올 때 까지 계속 자신을 용서하고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귀하는 직장을 구해서 일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좌절하고 실패하고 있는 때, 마음속에서는 “너는 이번에도 실패한 것을 보니까 너는 가망이 없어. 너는 별수 없어!”라는 자신의 부정적인 자신의 소리 대신에, “괜찮아! 다시 일어나, 나는 너를 믿는다.”라면서 애타게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넷째: 귀하께는 성경적인 원리와 심리치료적인 원리의 통합을 원하셨는데, 이점은 가능합니다. 전통적으로 보면 기독교 따로 심리적인 치료 따로, 영적인 성장 따로, 심리적인 성장 따로 라고 강조했는데, 이제는 심리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장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니고 통합적으로 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적인 원리가 교회 안에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귀하의 심리적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실현되고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려고 시도했는 데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보다는 내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현장에서 정확히 적용했는가 왜곡했는가를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영적으로도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